
얀데레물/일상물
오늘은 얀데레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번 회차가 반전이 가장 많이 들어있을 듯 하네요.!!
약 3000자.
아래 음악을 틀고 읽으시면 몰입이 더 수월하실 거예요!!
《내 물감이 마를 때까지》
#009.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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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크림맛 쿠키의 목 끝 까지 알 수 없는 기시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강렬한 초록빛 연기로 코 끝이 찡해진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와 있지만 어쩐지 다른 쿠키도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분명 이 곳에는 보랏빛으로 가득해야 한다. 하지만 가끔씩 초록빛이 옅게 스쳐 지나간다.
"로즈 크림 쿠키. 정말 미안, 내가 장난이 너무 심했지."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멋쩍게 웃으며 사과한다.
"괜찮아,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
로즈 크림맛 쿠키는 자책하는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를 달래며 속으로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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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베리맛 쿠키 안에서 숨길 수 없는 익숙한 빛의 느낌이 새어 나온다.
당황할 때 본능적으로 나오던 약간의 손동작과 말투.
조금은 다르지만 짧은 걸음걸이.
내게 생기를 주던 푸른 녹색의 아름다운 향취.
내가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쿠키와 겹쳐 보아서 일까? 고작 이미 사라진 쿠키와 닮았단 이유로 좋아하게 되는 건 너무 몹쓸 짓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혹시, 아주 조금이라도 그 쿠키의 환상을 잡고 싶어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 마음을 당장 정리해야 할 것이다. 내게 호의적으로 행동하는 쿠키에게 그런 짐을 나눠주고 싶지 않다. 그 쿠키가 내게 먼저 호의를 보여주었으니, 나 또한 마음을 정리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호의이자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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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로즈 크림맛 쿠키는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와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에게 부축받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에 대한 죄책감을 줄이고 싶었을 뿐 이였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그동안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에게 받았던 자그만한 친절들을 생각하며 한 가운데에 전부 모은다. 자그만한 덩어리들이 연결되어 그 쿠키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결합된다.
아.. 정말 좋은 쿠키인데.. 그 쿠키의 대한 마음을 쥐고 내가 실수한다면..
로즈 크림맛 쿠키는 그 청량한 푸른색의 기억들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에,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를 향한 코랄 빛의 간질거리는 마음을 접어두기로 한다.
물론 그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많이 겪었다. 당연하다. 누가 좋아하는 그 열정적인 마음을 한 순간에 잊을 수 있겠는가? 마음 한 편으론 작은 파편들이 그 마음을 의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미련만 남겨두고 멀찍히 그 쿠키를 지켜볼 뿐이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고민들에 허덕이며 겨우겨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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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익숙해도 너무 익숙하면서도 으스스한 푸른 숲에서 로즈 크림맛 쿠키가 깨어난다.
또.. 그 검은 재 들이 날리던 악몽의 숲 속이구나.
로즈 크림맛 쿠키는 그 숲이 두렵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쿠키의 반죽 한 조각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결국은 다시 돌아오게 되는 숲. 참 기이한 숲이다.
벌써 이 숲이 꿈에 나온지 여섯번이다. 나는 절대 이 곳을 잊지 못한다. 아니, 잊을 수 없다는 듯 잊을 때면 나타난다. 보통 이 숲이 나오는 꿈의 내용은 이렇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눈 앞에 나타나며 로즈 크림맛 쿠키를 위로하다가 돌변해서 죄책감을 심어주고, 절정에는 죽음의 문턱 바로 앞까지 끌고간다.
역시나-
[요즘은 좀 어때? 전처럼 또 방 구석에서 울고만 있는 건 아니지?]
언제나 그랬 듯, 포레스트 블룸 쿠키의 목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진다. 그 쿠키의 가늘고도 한 맺힌 듯 어딘가 굳센 목소리가 로즈 크림맛 귀에 꽂힌다. 다른 사람이 듣기엔 조곤조곤한 목소리지만 로즈 크림맛 쿠키가 듣는 목소리는 깨진 유리의 파편처럼 날카롭다.
"잘 지내고 있어. 이제 울지도 않고."
로즈 크림맛 쿠키가 그 쿠키의 한 맺힌 목소리를 견뎌내며 답한다.
[최근에 뭔 일은 없었어? 예를 들면 나를 닮은 쿠키를 찾았다던가?]
그 목소리는 현재의 로즈 크림맛 쿠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 말한다.
뭐야..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로즈 크림맛 쿠키가 그렇게 생각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목소리가 들리는 풀숲을 뚫어지게 노려본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간다.
스윽-
그러자 무언가 발에 채인다.
오래된 금속같이 차가운... 아, 이거 전에 겪었던 흐름과 똑같잖아. 아마도 이건 포레스트 블룸 쿠키의 맑은 에메랄드 색의 팔찌와 목걸이겠지..
하지만 예상 밖으로 작은 은빛 동전 하나가 로즈 크림맛 쿠키의 손에 잡힌다.
그 은빛 동전 윗면에는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뒷면에는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금이 간 포레스트 블룸 쿠키가 새겨져 있다.
..응? 뭐야 이거..
로즈 크림맛 쿠키가 이상한 형상의 포레스트 블룸 쿠키가 새겨진 동전의 뒷면을 미미한 햇살에 비춘다. 햇살을 받은 은빛 동전이 순간 반짝이고, 형상이 더 자세히 보인다. 자세히 그 동전을 보면 금이 간 형상 말고도 소름끼치는 미소를 짓고있는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와 슬픈 표정의 포레스트 블룸 쿠키가 있다.
[응? 결국 찾았구나.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뒷면을.]
로즈 크림맛 쿠키가 그 말의 의미를 물어볼 새 없이 이상한 형상의 불투명한 흰색의 혼령들이 로즈 크림맛 쿠키의 주변을 맴돌며 이상한 말들을 쏟아낸다.
"그 아이는 스스로를 감춰버렸다."
"아아. 초록빛이 감도는 불쌍한 아이여."
"어쩌면 이들의 결말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아직 꺼지지 않은 생명의 등불."
"보랏빛에 삼켜진 초록빛이."
"지나친 호의가 파멸을 불러왔구나."
그 혼령들이 재잘 댈 때 마다 이상한 주마등이 스친다. 하지만 몇몇은 전혀 자신의 것이 아니게 느껴진다. 어쩌면 로즈 크림맛 쿠키만의 주마등이 아닐지도 모른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순식간에 지나간 기억들을 더듬는다.
기억나는 장면이라곤..
재로 가득 차 자욱한 숲 밖으로 빠져나가는 포레스트 블룸 쿠키.
숲 밖에서 주저앉아있는 포레스트 블룸 쿠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포레스트 블룸 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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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반전이 뭔지 알아 채셨을 것이라 믿습니다..ㅋㅋㅋㅋㅋ
저번엔 로맨스물 이었다가 갑자기 너무 꺾었나?? 어째 분량이 점점 짧아지는 느낌이.. 1화 때 분량을 잘못잡았네.. 나 과거에 4600자 어케 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