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얀데레물/일상물
오늘 회차에는 얀데레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오늘은 약간의 로맨스물..? 이네요
약 3800자.
아래 음악을 틀고 읽으시면 몰입이 더 수월하실 겁니다 :)
《내 물감이 마를 때까지》
#008. 선의의 가면
ㅡ
"어디서부터 들었어?"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로즈 크림맛 쿠키를 바라보고 사색에 잠긴다.
점심의 햇빛에 비추어져 머리카락 밑에 그늘진 얼굴이 꽤나 두렵게 느껴진다.
"으응..? 무슨 얘기. 나 방금 와서 무슨 말 하는지 못들었는데?"
로즈 크림맛 쿠키가 시치미를 뗀다. 잠깐 당황해서 버벅거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는 정말 듣지 못했다는 양 연기한다. 중학교에선 연극부에서 활동했었던지라, 로즈 크림맛 쿠키의 연기 실력은 그 버벅거림을 만회하기엔 충분했다.
"정말? 그럼 됐어."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로즈 크림맛 쿠키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듯 보인다. 사실 그 어떤 쿠키라도 로즈 크림맛 쿠키의 순진한 척 하는 붉은 눈을 보면 더 할 것도 없이 속아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눈빛이 무언가 이상하다. 그 쿠키의 눈빛이 아직 풀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매섭다. 순진한 척 하는 붉은 눈을 꿰뚫고 로즈 크림맛 쿠키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 쿠키의 눈빛이 로즈 크림맛 쿠키의 심장을 관통한다. 양심의 가책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따끔거림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겉으로만 보이는 가면 같은 감정과 마음 속 깊이 꽁꽁 싸매여 숨겨진 감정 모두 간파당하는 기분이다.
안타깝게도, 목 끝까지 차오른 무언의 감정에 로즈 크림맛 쿠키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움직인다. 그 꽁꽁 숨겨져 있던 따끔거리는 감정만 밖으로 표출되어 거짓말은 얼마 안 가 들통난다.
"로즈 크림맛 쿠키. 그거 거짓말이지."
로즈 크림맛 쿠키의 누가 보더라도 속을 것만 같이 느껴지던 표정에 속아 넘어갔던 클라우드 소다맛 쿠키 마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아... 아.. 그게 뒷 부분은 조금 들었는데 나머지는 못 들었어요."
로즈 크림맛 쿠키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마자 속을 어지럽히던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된다.
로즈 크림맛 쿠키가 거짓말이 들통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곳에 초점을 맞춘다. 예상과는 다르게 거짓말을 했다는 단순한 양심의 가책이 아니다. 그 문제의 답을 알기 위해서는 문장 앞에 있는 흐릿한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좋아하고 동경하고 또, 어딘가 그리운 향취를 풍기는 그 쿠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양심의 가책이다.
로즈 크림만 쿠키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마음을 자각받는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자각받는 게 중요한가? 얼른 그 이기적인 감정을 숨기고 다시 "선의"라는 가면을 쓴 사람으로 연기해야만 한다.
..선의? 선의라니? 스스로를 포장하는 비겁한 변명에 스스로를 비난한다. 클라우드 소다만 쿠키와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말에 언제나처럼 완벽히 연기해야 하는데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삐이이-
머리에서 이명이 들려온다. 그 소란스러우며 조잡한 소리에 로즈 크림맛 쿠키가 조각나지 않도록 부여잡고 있던 가면이 산산조각난다. 형체도 알아 볼 수 없는 가면이 바닥에 덩그러니 바닥에 늘어져 있다. 로즈 크림맛 쿠키가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가면의 조각 하나하나를 손에 모은다.
한 조각 씩 주워 모든 조각들이 한 데 모여진다.
로즈 크림맛 쿠키가 그 조각들을 다시 결합하려고 하는 그 때.
"..로즈 크림맛 쿠키. 너 지금 뭐해? 환상이라도 보는거야?"
당장이라도 합쳐질 것만 같던 가면의 조각들이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한 마디에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로즈 크림맛 쿠키가 절망하며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를 올려다본다.
저 머리카락.. 나를 홀려버린 그 머리카락. 지긋지긋하도록 계속 봐왔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 저 빛깔들은, 따스하게 내 손을 맞잡으며 나를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으로 이끈다.
그와 함께 친절한 척 하는 보랏빛의 눈은 내가 스스로 고립이라는 이름의 족쇄에 가두게끔 유도한다.
잔인하게 친절한 그 웃음에 마음이 위태롭게 휘청거린다. 그 속셈을 전부 알고 있으면서 되려 내 쪽이 그 쿠키에게 속절없이 속아 넘어간다.
로즈 크림맛 쿠키의 어딘가 이상한 상태에,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는 고민하다가 클라우드 소다맛 쿠키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더니 로즈 크림맛 쿠키를 부축해서 어딘가로 향한다. 자연스럽게 로즈 크림맛 쿠키는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에게 기대어 몸과 마음 마저도 모두 의지하게 된다.
ㅡ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는 로즈 크림맛 쿠키를 한적한 공원으로 데려가 벤치에 앉힌다. 그리고 로즈 크림맛 쿠키의 옆에 앉으며 입을 연다.
"로즈 크림맛 쿠키, 괜찮아?"
아까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아까는 매섭고 한기가 겉도는 분위기를 풍겼다면, 지금은 다정하고 따스한 향취를 풍긴다.
"어, 응. 덕분에 조금 나아졌어."
로즈 크림맛 쿠키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짓는다. 로즈 크림맛 쿠키의 감정을 숨기던 표정이 사라지고 진심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만이 남는다. 하지만 거짓말을 숨겨야 한다는 감정 말고도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에게 숨겨야 하는 감정은 하나 더 남았기에, 로즈 크림맛 쿠키는 그 쿠키를 주시하며 조금 긴장한다.
그리고 우연히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손과 로즈 크림맛 쿠키의 손이 약간 부딪힌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 그 둘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의문이라는 듯 동그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겠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이 맞닿은 부위에 붉은색이 물들어져 간다.
"미..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였어."
로즈 크림맛 쿠키가 손을 벌벌 떨며 붉게 상기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을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귀엽다는 듯 쳐다보다 활짝 웃는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따스한 말투로 로즈 크림맛 쿠키를 다독인다.
그리고 로즈 크림맛 쿠키의 반응을 즐기며 한 편으론 조금 놀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는 미약하게 눈꼬리를 접어 올리며 로즈 크림맛 쿠키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로즈 크림맛 쿠키의 턱을 조심스레 들어올려 눈을 제대로 마주하게끔 한다.
"로즈 크림맛 쿠키? 너 얼굴이 너무 새빨간데. 열 있는거 아냐?"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쿡쿡 웃으며 로즈 크림맛 쿠키를 교묘하게 놀린다.
"..!"
휙-
로즈 크림맛 쿠키가 너무 놀란 나머지 고개를 왼쪽으로 휙 돌린다.
로즈 크림맛 쿠키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붉게 물들어있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 목표는 무너져 내린다.
로즈 크림맛 쿠키의 체온이 핫팩마냥 따뜻하다. 많은 사건들에 치이고 상처받아 완전히 얼어붙은 줄로만 알았던 그 체온 말이다. 로즈 크림맛 쿠키를 보는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싱긋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두 손으로 로즈 크림맛 쿠키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싼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한 걸음 다가갈 때 마다, 저벅저벅 걷는 발소리가 아닌 로즈 크림맛 쿠키의 심장 소리가 더 크게 울려퍼진다.
많은 사건들로 변질되었던 로즈 크림맛 쿠키의 심장의 점차 제 모양을 되찾는다. 점점 숨이 가빠지고 진정이 되지 않는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아주 오래 전부터 감아놓은 이름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끈에 얽히고 설켜 로즈 크림맛 쿠키는 빠져나가지 못한다.
아니, 로즈 크림맛 쿠키는 빠져나갈 수 있었어도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에게 그 쿠키의 기운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짙은 풀의 향기가 새어나오는, 그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그리고 본인 마저도 숨기지 못할 그 쿠키만의 향기.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와 대화할 때면, 강렬한 초록빛 향취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정말 그 쿠키가 살아 있기라도 한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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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레전드 막장.. 글럼프 에반데..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번 화로 스토리의 반전이 뭔지 대충 알아 채실 수도 있겠네요..? 전부터 떡밥을 계속 던져두긴 했는데 다들 어떻게 추리하실 지 조금 궁금합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