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얀데레물/일상물
오늘 회차에는 강한 유혈 묘사, 사망 요소, 얀데레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으실 때 유의 부탁드려요!
약 5400자.
아래 음악을 틀고 읽으시면 몰입이 더 수월하실 거예요.!!
《내 물감이 마를 때까지》14화 / 완결
#014.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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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크림맛 쿠키는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꿈의 내용이 거짓이 아니었다. 그냥 헛꿈인줄로만 알았는데 정말로 진실만을 말해주고 있었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정체에 많이 충격받았지만, 기이한 의문이 뇌리를 스친다.
"왜 지금까지 네 정체를 숨긴거야?"
로즈 크림맛 쿠키의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 담겨있다. 잔혹한 피처럼 보였던 로즈 크림맛 쿠키의 눈은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
"그야 널 미치도록 좋아했으니까. 마음이 꽉 차도록 사랑했으니까. 네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소중해서 네가 싫어하는 줄로만 알았던 내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는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로즈 크림맛 쿠키에게 죄책감이 밀려온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친절에 꼭 보답해주고 싶었는데, 영원하지도 못할 내 못난 사랑의 감정으로 보답해줄순 없었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는 왜 내가 본인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었던걸까. 로즈 크림맛 쿠키는 여전히 노쇠한 자물쇠가 굳게 걸려있는 해답을 바라보며 고뇌하고 있다. 억겹의 시간같은 30초가 지나고 나서야 녹슨 자물쇠가 허공의 바닥으로 떨어진다. 자물쇠가 사라진 그 해답을 들여다보자, 30초라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터무니없이 사소한 원인이 남아있다.
언젠가 로즈 크림맛 쿠키는 은하수같은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기억이 흐릿했지만 그 기억의 분명했던 부분이 있다.
아주 오래 전, 포레스트 블룸 쿠키에 대한 마음을 대놓고 들켜버리고 싶지 않아, 포레스트 블룸 쿠키의 외모를 봤을 때 대조되는 은하수라는 키워드를, 하지만 그 쿠키를 잘 아는 쿠키라면 이 키워드는 그 쿠키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게끔 꼬아서 말했던 기억이 분명히 남아있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포레스트 블룸 쿠키의 은하수같은 끝없이 다정한 성격을 좋아했다. 그 보석처럼 반짝이는 감정에 제 손을 뻗으면, 뻗는대로 잡혀 그 은하수를 맘껏 배회하며 누릴 수 있을것만 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 나름대로의 사랑고백은 로즈 크림맛 쿠키만 알고있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을 자신을 싫어해서 일부러 비꼬며 말했다고 생각했구나. 사실은 그게 아니였는데.
한 번 꼬여버린 운명의 붉은 실은, 이미 한참을 엉켜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꼬여있었다. 그 실을 풀어내려고 죽도록 노력했다면 온전한 상태로 돌아갔을지도 모르지만, 현재로 봐선 나는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나보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정도로 꼬인 실을 남겨둔다면 다른 멀쩡한 운명의 실까지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기에, 이제는 정말로 선택해야만 한다.
그 실을 내버려두고 모든 실이 꼬여버리는 참사를 맞이할 것인지, 혹은 그 꼬여버린 실만 잘라내버릴 것인지.
"로즈 크림맛 쿠키, 아직도 나를 좋아해?"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자신과는 비교가 될 정도였다. 그런 상태를 내버려 둘 수 없다.
"..미안해."
한마디였다. 겨우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한마디 속에 셀 수 없는 말들이 겹쳐져있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로즈 크림맛 쿠키는 운명의 실을 잘라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더 이상 뒤로 돌아갈 수 없다.
"..미안하다니, 좋아하지 않더라도 괜찮아, 그냥 우리 함께만 있을 수 있다면 상관 없으니까.. 그러니까.."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눈이 붉게 물든다. 슬퍼 보이기 보다는.. 어딘가 알 수 없는 소유욕이 비추어진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그 말에 충격받아 뒷걸음질 친다.
"로즈 크림맛 쿠키, 왜 뒤로 가는 거야? 내가 완전히 싫어졌어? 내가 질렸어?"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목소리에 광기가 짙게 묻어나온다. 애절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로즈 크림맛 쿠키를 부르는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목소리가 동아리실 내부에 가득 울려퍼진다. 잔인하도록 날카로운 말들을 잔뜩 뱉어내던 그 쿠키는 로즈 크림맛 쿠키가 아무 말도 없자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인다.
"아하하.. 그래, 이제 아무래도 그런 건 상관 없겠지.."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천천히 로즈 크림맛 쿠키에게 다가온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 다가오지 마."
로즈 크림맛 쿠키가 손을 벌벌 떨며 그 쿠키의 행동을 주시한다.
"우리는 평생을 함께 할 사이잖아? ..설령 네가 죽더라도 말이지."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있다. 그 쿠키는 로즈 크림맛 쿠키의 경고를 무시하며 한 발 두 발 로즈 크림맛 쿠키에게 다가간다. 창문에 비치는 달빛에 동아리실 내부에 있는 두 쿠키를 비춘다. 밝은 회백색의 달빛을 가득 받은 로즈 크림맛 쿠키와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교복 명찰, 단추 또한 함께 빛나고 있다. 그런데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손에서도 빛이 옅게 비추어진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의아해하며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손을 쳐다본다.
어딘가 날카로운..
"아, 이거?"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반짝이던 물체를 쥔 손을 번쩍 올린다. 그 쿠키의 손엔 커터칼이 쥐어져 있다. 놀랍게도,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는 로즈 크림맛 쿠키를 죽일 각오 마저도 하고 온 듯 보인다.
그 소름끼치는 허공을 가르는 날붙이의 소리가, 로즈 크림맛 쿠키를 금방으로 찔러버릴 듯 경고같은 협박의 의미를 내뿜는다.
"로즈 크림맛 쿠키, 나는 정말 널 사랑해.. 그러니까 우리 영원히 함께하지 않을래?"
자신을 끌어당기는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블랙홀 같은 머리카락에 잔뜩 겁먹은 로즈 크림맛 쿠키는 자신의 짐을,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휴대폰을 챙기지도 못한 채 동아리실 밖으로 도망친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머릿 속이 새하얗게 물들며 혹시라도 학교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을까 미친듯이 학교를 헤집으며 달린다.
어쩌면 오늘 자신의 명을 다할 수도 있겠다는 기이한 확신에 두려웠던 로즈 크림맛 쿠키는 쉴 새 없이 달린다.
반 쯤 포기하는 심정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분명 한 명의 발소리만 들려야 했는데, 어째선지 두 명의 발소리가 들린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가정을 확정시킨 로즈 크림맛 쿠키는 학교의 출구로 향한다. 안타깝게도, 이미 너무 늦어버린 시간대에 문이 열려 있을 확률은 희박했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절망하며, 또 다시 달린다.
그들의 죽음의 술래잡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에게 따라잡힌다면 자신의 목숨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 쯤은 이미 확실했기에, 그저 계속해서, 한 사람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로즈 크림맛 쿠키를 추격하는 것을 포기 할 때까지, 자신의 생명이 지켜짐을 확신하게 될 때까지 달릴 뿐이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발소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여차하면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와 몸싸움을 시도해볼까 생각했지만, 상대는 이미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어떤 부상을 입을지 알 길이 없었다. 하염없이 그 쿠키를 피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체력도 바닥났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생각한다.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이대로 계속 달려봐야 따라잡힐 것이 확실하다. 이럴 때는..
로즈 크림맛 쿠키는 코너를 돌며 한쪽 벽에 밀착한다. 이런 간단한 트릭이 먹힐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뭐라도 시도해봐야만 한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니, 실현해보는게 지금의 내 최선이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로즈 크림맛 쿠키의 심장 박동도 점점 빨라져 간다.
쿵- 쿵- 쿵- 쿵-
일정한 듯 보이지만 불규칙하게 엇나가는 박동의 소리가, 극에 달한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이 속임수가 통하길 간절히 빌고 있을 뿐이다.
휙-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벽에 꼭 붙어있는 로즈 크림맛 쿠키를 지나쳐 앞으로 달려간다. 실패할 것만 같던 그 속임수는 예상 외로 잘 먹혀들었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벽에 기대어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쉰다. 긴장되어 있던 신체가 안정되자, 신경쓰고있지도 않았던 몸 관절들이 욱신거린다. 꽤나 큰 고통을 애써 감내하며, 로즈 크림맛 쿠키는 보건실로 가서 간단한 정비를 한 뒤, 동아리실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로든 먼저 신고하기로 한다.
ㅡ
보건실에 도착한 로즈 크림맛 쿠키, 문은 잠겨 있었지만 평소 보건 선생님과 꽤나 친분이 있었던지라 보건실의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
철컥-
청아하고 경쾌한 그 소리가 교내에 울려퍼지며, 로즈 크림맛 쿠키는 서둘러 보건실 내부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이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겠다고 생각한 로즈 크림맛 쿠키는 서랍장으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붕대와 상처 부위에 바를 약을 꺼내든다.
그렇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동아리실에서 도망치기 전, 팔이 살짝 베였었다. 피가 뚝뚝 흐르는 팔을 지혈하다, 붕대로 팔을 칭칭 감는다.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라 조금 엉성한 형태로 감아지긴 했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흐르는 피를 막을 수 있다면 충분하겠지.
로즈 크림맛 쿠키는 잠시동안이라도 가만히 멈춰 쉬기로 결정한다. 응급처치를 했지만 고갈된 체력까지 회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보건 선생님의 서랍 속 저 끝에 있는 작은 초코바를 꺼내 한 입 베어문다.
이 상황에서 먹는 초콜릿이 달콤했던 것인지, 혹은 그저 전보다 더 자신의 취향인 초코의 맛이였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맛은 꽤나 중독적이였다.
잠깐의 휴식을 마친 로즈 크림맛 쿠키는 조심스레 보건실에서 나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이상하게도,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뭐지? 로즈 크림맛 쿠키는 속으로 작은 의문을 품으며, 사실은 큰 두려움을 품은 채 천천히 동아리실로 걸어간다. 예상 외로, 가는 길에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자신을 포기했다고 확신하며 많게만 느껴지는 계단을 오르고 동아리실 문 앞에 다다른다. 얼른 휴대폰을 챙기고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해야 한다.
드르륵-
문을 열자 로즈 크림맛 쿠키를 마주한 것은 놓여져 있는, 아니 놓여져 있었어야만 하는 그의 휴대폰이 아니라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싱긋 웃으며 서 있다. 교복 치마와 소매가 피범벅이 된 채 나를 향해 웃는 그 쿠키의 상태는 로즈 크림맛 쿠키가 소름돋게 만들기 충분하고도 남았다.
아, 잊고 있었다.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나의 심리를 모두 꿰뚫고 있다는 것을.
"로즈 크림맛 쿠키, 이제야 왔네? 너를 위한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어."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는 동아리실 벽에 걸려있던 자신의 사랑, 자신이 묘사한 사랑의 정의, 그림을 떼어 로즈 크림맛 쿠키에게 건넨다.
"사실 이 그림.. 너를 생각하며 그렸던 건데.. 오늘이 아니라면 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서.."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없었지만, 그 쿠키의 표정 만큼은 달랐다. 진한 피 같은 선홍빛의 눈은 밝게 빛났으며, 입가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의 유화는 완전히 마르는 데 적어도 6개월, 길면 1년 정도 걸린다. 하지만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의 그 진득한 유화의 그림은 평생토록 마르지 않을 것 처럼, 로즈 크림맛 쿠키의 향한 사랑이 마르지 않을 것 처럼만 느껴진다.
로즈 크림맛 쿠키는 허망한 듯 웃는다. 이제 정말 다 끝이구나. 그래, 이쯤이면 많이 노력했지. 이제 내 죽음을 받아들일 차례다.
그런 로즈 크림맛 쿠키의 생각을 읽은 듯, 칼을 든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가 한 발짝 씩 그에게 다가온다. 눈에 선명히 보이는 자신의 죽음의 타이머는, 로즈 크림맛 쿠키를 압박해온다.
"그럼.. 로즈 크림맛 쿠키, 우리 같이 있자, 함께 하자."
미드나잇 베리맛 쿠키는 자신의 유화를, 희망을, 그 쿠키를 바닥에 내려둔다. 그리고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야 로즈 크림맛 쿠키가 들릴 정도로만 작게 속삭인다.
"우린 함께야."
"내가 미술을 그만 둘 때 까지."
"너에 대한 마음을 접게 될 때 까지"
. . .
"내 물감이 마를 때까지!"
자신에게서 흐르는 뜨거운 선홍빛 액체에 잔뜩 적셔짐을 느끼며,
어딘가 편안한 표정을 하며,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한
로즈 크림맛 쿠키의 시야가 암전되며 길고 길었던 비극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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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완결이다~~~~ 분명 신나야 하는데 신나지가 않아요..물론 아직 외전이 남아있긴 하지만 보내기가 아쉽네요..
완결인 만큼 분량은 확실히 늘려왔습니다.!!
저 근데 저거 마지막 대사 진짜 열심히 짠건데 다들 세 번 씩만 돌려봐 주세요.. 흐흐..
그럼 이만 외전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