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노래를 틀고 들으시면 몰입이 더 수월하실겁니다!!
※경고문※
이번 회차에선 극단적인 묘사, 강한 트라우마, 피폐 요소가 정말 많이 들어가있습니다🙇♀️
이러한 묘사에 거부감 느끼시는 분들은 감상에 주의 부탁드리겠습니다!!
약 4300자.
《내 물감이 마를 때까지》
#003. 친구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도착한 나는 그대로 침대에 뛰어들며 생각한다.
오늘은 정말 피곤하면서도 즐거웠던 하루였다.
"으으.. 학원에 지각할 뻔해서 너무 급하게 뛰어갔더니.."
작은 움직임을 할때마다 반응이라도 하듯, 내 몸 곳곳이 욱신거렸다.
"으. 씻고 오늘은 빨리 자야지."
나는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다리를 절뚝이며 욕실로 향했다.
ㅡ
풀썩-
그렇게 샤워를 끝내고 살짝 머리를 말린 뒤, 나는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샴푸의 향긋하고 달콤한 과일향이 내 주위를 감돈다.
그리고는 자동으로 눈이 스스르 감긴다.
그제서야 나는 힘들고 지친 마음 대신 편안하고 안락한, 꿈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ㅡ
꿈 속.
으음.. 여긴 어디지
나는 익숙하면서도 으스스한 푸른 숲 속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형형색색의 반딧불이들이 주위로 날아다닌다.
반딧불이의 빛으로 가득 찬 푸른 숲은 으스스한 느낌은 커녕, 오히려 몽환적이고 신비했다.
그런 장관을 보고 있자니 내 짙은 붉은 눈이 루비처럼 물들어갔다.
그나저나 분명 이 곳은 처음일텐데, 어쩐지 속이 울렁거리고 쓰라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와본 적 있는 곳인가?
나는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한다.
툭-
무언가가 발에 채였다.
풀이라기엔 조금 더 단단하고, 오랫동안 방치된 금속같은 차가움이 느껴진다.
그 감촉이 느껴지자마자 기이한 오한이 들었다.
"흠.. 그나저나 우리 도시에 이런 숲이 있었나.."
이 공간에 의문감을 가지며 그 밑을 쳐다보니,
숲에 마구잡이로 놓여있는 맑은 에메랄드 색의 팔찌와 목걸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
그 물건을 보자마자 과거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그러고선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 없다. 이런 숲이 없어야만 한다. 이곳은 오래 전에 불에 타 재로만 남아있어야 할 곳이다.
어째서? 내가 왜 이 곳에 있는거야. 환각인가? 이것도 일종의 벌이야?
이보다 더 죄책감을 가지라고? 어쩔 수 없었잖아. 이제와서 뭐 어쩌라고.
점점 머릿속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게된다.
지금도 이게 무슨 일인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는 한 층 더 깊은 강렬한 기억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ㅡ
과거.
"로즈 크림맛 쿠키! 빨리 와!"
선명한 에메랄드 머리와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노란 눈의 쿠키가 나를 부르고 있다.
햇빛이 그 쿠키를 감싸자 어떤것보다 맑고 빛나는 노란 토파즈 같은 눈은 누구라도 홀려버릴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 쿠키는 에메랄드 빛깔의 팔찌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알겠어. 포레스트 블룸 쿠키. 조금만 기다려"
나는 저 쿠키에게 아이 특유의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하던 일을 마저한다.
나는 주변에 널려있는 세잎클로버 사이에서 저 쿠키에게 선물 할 네잎클로버를 찾고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행복 사이에서 행운을 찾는다라..
...하지만 행운을 위해서 필요한 게 행복 아니야?
별로 내키지 않지만 다들 행운이 더 좋다고들 하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그 쿠키도 네잎클로버를 더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ㆍㆍㆍ
"찾았다! 7번째 네잎클로버."
어느새 네잎클로버 찾기에 열중하다보니 포레스트 블룸 쿠키를 따라가는 것도 잊고 있었다.
앗. 놓쳐버렸네..
"포레스트 블룸 쿠키! 포레스트 블룸 쿠키!"
나는 목청이 터지도록 사방으로 소리쳤다. 이 푸르고 으스스한 숲에 혼자 남겨지는 건 정말 별로였기 때문이다.
그때, 꽤 가까이 보이는 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응? 누군가 캠프 파이어를 하고 있나? 그치만 여긴 나무 많은 숲이라 산불 위험도 높은데다 아직 2시인데도?
"어쩔 수 없지.. 포레스트 블룸 쿠키도 안보이는데. 내가 따끔하게 경고를 해줄 수 밖에!"
저벅저벅-
이상하다? 왜 난 두 걸음도 가지 않았는데 연기가 벌써 느껴지는거지?
잠시만.. 이 매캐한 냄새는 캠프 파이어가 아닌데..?
아. 산불이구나
"흐으.. 흐으.."
나는 급하게 내가 들어왔던 산의 입구 쪽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지금 산에 누가 남겨졌는지 생각하지도 못 한 채.
ㆍㆍㆍ
그렇게 쫓기듯 산에서 벗어난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았다.
숨이 차오른다.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허억.. 산 전체가.. 헉.. 불타고 있어.."
"...그나저나 포레스트 블룸맛 쿠키는?"
나는 급하게 주변 어른에게 알린 뒤 조마조마하며 포레스트 블룸 쿠키가 입구 밖으로 나오도록 기다렸다.
애석하게도, 해가 저물고 구조대원이 도착해 진화 작업이 거의 끝나갈 때 까지 포레스트 블룸 쿠키가 구조되어 나오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마음 속이 점점 더 새카만 암흑 속으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포레스트 블룸 쿠키는 그 산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아. 내가 친구를 배신했다. 내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친구가 죽었다. 내가 나만 살겠다고 먼저 뛰쳐나가지만 않았어도 그 쿠키는 살았을 것이다. 나는 이 죄를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가?
내 꽉 쥔 두 손엔 이미 시들고 다 뜯어져버려 형체도 알아보지 못 할 네잎클로버 한 무더기만 남아있었다. 나는 그 네잎클로버들을 바라보며 흐느꼈다.
그렇다. 나는 내가 바라던 행복 대신 남들과 같이 행운을 선택했다.
나는 친구를 구한다라는 이름의 행복 대신 내가 살아남는다라는 행운을 선택했다.
행운을 얻었다. 하지만 행복이 없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지?
포레스트 블룸 쿠키, 다른 말로 하자면 내 첫사랑을 배신하고 쟁취한 그 행운은 내겐 행운도 아니었다. 오히려 어린 날의 악몽이자 최악의 트라우마로 남게되었다.
ㅡ
다시 꿈 속.
풀숲에 널브러진 맑은 에메랄드 빛깔의 팔찌와 목걸이를 줍는다.
"포레스트 블룸 쿠키... 미안해.. 정말.. 할 말이 없어.."
나는 네잎클로버 대신 그 팔찌와 목걸이를 손에 꼭 쥐고 그 때와 같이 어린 애처럼 흐느꼈다.
그 순수한 영혼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꿈이라면, 꿈이니까.. 다시 내 앞에 나타나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아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거야. 너무 양심이 없잖아.
배신해놓고 돌아와달라 애원하는 꼴이라니..
그 때, 하얀 형체가 내 주위에 둥둥 떠다니더니, 글씨의 형태로 변한다.
[그토록 갈망하던 행복은, 행운은 찾았어?]
다정한 목소리의 환청이 들린다. 몇 년이 지났지만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애의 목소리다.
동공이 커진다.
입을 틀어막는다.
숨을 쉬지 못한다.
[이런, 너 너무 긴장한 거 같은데?]
"정말 너야? 포레스트 블룸 쿠키?"
성급하게 말한다.
[...이제야 후회해?]
어째선지 방금의 다정한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날카롭다.
"그딴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면목이 없어."
[너 때문에 내가 어떤 고통을 느꼈는지 알아?]
점점 언성이 높아지더니 억울한 듯 윽박지른다.
"미안해..정말 미안해..정말..ㅁ-"
[시끄럽고 멍청해, 너 같은 건 벌을 받아야 마땅해, 너도 그렇다고 생각하지?]
과거의 기억과 죄책감이 겹쳐져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이미 너덜너덜하다.
"물론이지, 내가 뭘 하면 되는데?"
무언가에 홀린 광신도처럼 지시를 기다렸다. 그런 나를 마주한 말은,
[몰라서 물어? 너가 제일 잘 알잖아. 날 따라와야지.]
날카로워진 유리 파편 같은 목소리는 가소롭단 듯 속삭였다.
"...그래, 그렇게 할게."
[내가 항상 네 곁에서 지켜볼테니 걱정말고.]
분명 안심되어야 하는 말인데, 협박의 의미가 더 크게 느껴졌다.
꽈악-
그 목소리가 말을 끝내자마자 무언가가 내 숨통을 조인다.
내 시야는 빠른 속도로 어두워지다 마침내 암전되었다.
ㅡ
무언가에 목이 졸려 질식한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침대에서 일어난다.
내가 본 과거도, 그 목소리도 다 꿈이자 환각이다. 이제 안심해도 된다.
나는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내 자신을 안정시키려했다.
내 목을 조여 질식하게 만든 그 무언가는.. 다름아닌 내 두 손 이었다.
탁-
목을 감싸던 손을 황급히 놓는다.
겨우 조금씩 쉬던 숨이 충격으로 이번엔 아예 멈춰버린다.
억지로라도 안정시켜 가라앉힌 마음이 다시 뒤틀린다.
아. 속죄하려면 이 길 밖에 없는건가.
점점 절망감에 휩싸인다. 헛구역질이 나오고 머리가 어지럽다.
내가 뭘 하던 이 짓 말고는 이 죄책감을 씻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이 희미해진다. 심장이 뛰는 속도도 불규칙하다.
이대로면 산소 공급이 멈춰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진정..제.. 진..정제..!!
희미해지는 의식을 겨우 붙여가며 서랍을 열고 흰 통을 꺼내 진정제 세 알을 입 속으로 털어넣는다. 과복용은 지금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내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있는지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머리가 깨질듯이 어지럽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다행히 점차 희미했던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ㅡ
너무 급전개인가.. 3화에 이렇게까지 방향을 튼다니..
네.. 힐링/일상/약간의 로맨스물 같은 전개에서 피폐로 확 틀었죠?
피폐물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처음엔 유혈도 거의 안쓰겠다고 자신만만히 말했지만 벌써 이 상태인걸 보니 못 지킬 듯 하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동심 가득한 설노창에 이정도 수위의 소설을 올려도 되나? 싶지만.. 피폐물을 좋아하신다는 의견이 있어서 조심스레 올려봅니다
이정도가 너무 버겁다고 느껴지시면 꼭!!! 댓글 남겨주세요!! 조정해보겠습니다🙇♀️🙇♀️
글에 대한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